게재일 | 1990-04-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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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 한겨레신문 |
[한겨레논단]
죽순의 시작
어제가 식목일이었다. 해마다 식목일에 수많은 나무를 심지만 대나무를 심는 사람은 없다.
대나무는 누가 심어주어서 자라는 나무가 아니라 오직 뿌리에서만 그 죽순이 나오기 때문이다. 땅 속의 시절을 끝내고 나무를 시작하는 죽순의 가장 큰 특징은 마디가 무척 짧다는 점이다. 이 짧은 마디에서 나오는 강고함이 곧 대나무의 곧고 큰 키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훗날 횃불을 에워싸는 죽창이 되고, 온몸을 휘어 강풍을 막는 청천 높은 장대 숲이 될지언정 대나무는 마디마디 옹이진 죽순으로 시작한다.
대나무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나무들은 마디나 옹이로 먼저 밑둥을 튼튼하게 한다.
이것은 사람들의 일상사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새 학교를 시작하든, 묵은 학원을 다시 시작하든, 새 직장을 시작하든, 어제의 일터에 오늘 다시 불을 지피든, 모든 시작하는 사람들이 맨 먼저 만들어 내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짧고 많은 마디이다.
나무가 아닌 우리들의 삶에 있어서 마디는 과연 무엇이며 또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만들어 내어야 하는가. 이러한 물음은 새봄과 함께 세차게 일어나는 우리 사회의 여러 부문 운동에 있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새로운 뜻을 심고자 하는 평범한 사람들, 그리고 지천명의 나이에 세상을 시작하는 내게도 절실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세상사가 어렵다고 하는 까닭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 때문에 새로운 것은 언제나 낡은 것의 완강한 저항과 억압 속에서 시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는 그래도 덜한 경우이고, 낡은 것이 새로운 것을 부단히 배우고 수용함으로써 자기 개선을 해 나갈 수 있는 최소한의 탄력성마저 상실해버린 단계가 되면 이는 아예 초전박살의 살벌한 위기구조가 되고 만다. 이 때 죽순은 다만 좋은 먹이가 될 뿐이다.
죽순의 마디는 분명히 뿌리에서 배운 것이다. 캄캄한 땅속을 뻗어가던 어렵던 시절의 몸짓이다. 역경의 산물이며 동시에 저항의 흔적이다. 그것은 차라리 패배의 상처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좌절과 패배를 딛고 일어선 의지의 인생을 우리는 물론 알고 있으며, 처절한 패배로 막을 내린 민중투쟁마저도 유구한 민족사의 밑바닥에 묻혀 있다가 이윽고 찬란한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던 승패의 변증법을 우리는 역사의 도처에서 읽어서 안다.
객관적 조건과 주체적 역량에 맞는 목표와 단계를 설정하는 일이 곧 마디의 과학이라 생각하며, 달성할 수 있는 목표, 이길 수 있는 싸움을 조직하는 일이 바로 짧은 마디의 교훈이라 생각된다. 손자병법이 가르치는 바도 다르지 않은데, 이를테면 전쟁을 잘 한다는 것은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를 이기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약한 상대를 고르라는 비열함이 아님은 물론이다.
용두사미란 경구를 모르는 사람이 없듯이 정당이든 단체든 개인이든 거대하고 요란한 출발은 대체로 속에 허약함을 숨기고 있는 허세인 경우가 허다하다. 민들레의 뿌리를 캐어 본 사람은 안다. 하찮은 봄풀 한 포기라도 뽑아본 사람은 땅속에 얼마나 깊은 뿌리를 뻗고 있는가를 안다. 모든 나무는 자기 키만큼의 긴 뿌리를 땅속에 묻어두고 있는 법이다. 대숲은 그 숲의 모든 대나무의 키를 합친 것만큼의 광범한 뿌리를 땅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대나무가 그 뿌리를 서로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나무가 반드시 숲을 이루고야 마는 비결이 바로 이 뿌리의 공유에 있는 것이다.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나면 이제는 나무의 이야기가 아니다. 개인의 마디와 뿌리의 연대가 이루어 내는 숲의 역사를 시작하는 것이다. 홍수의 유역에도 흙을 지키고 강물을 돌려놓기도 하며 뱀을 범접치 못하게 하고 그늘을 드리워 호랑이를 기른다. 그 때쯤이면 사시청청 잎사귀까지 달아 바람을 상대하되 잎사귀로 사귀어 잠재울 것과 온몸으로 버틸 것을 적절히 가릴 줄 안다. 설령 잘리어 토막 지더라도 은은한 피리소리로 남고, 칼날 아래 갈갈이 찢어지더라도 수고하는 이마의 소금 땀을 들이는 바람으로 남는다. 식목의 계절에 저마다 한 그루의 나무를 심기 전에 잠시 생각해 보자. 나는 어느 뿌리 위에 나 자신을 심고 있는가. 그리고 얼마만큼의 마디로 밑둥을 가꾸어 놓고 있는가. 한겨레신문 1990. 4.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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